현대자동차그룹이 대규모 실차 데이터를 AI 학습과 검증으로 연결하는 '데이터 플라이휠'을 앞세워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낸다.
현대차그룹은 9월 11일(금) 포티투닷 본사(경기도 성남시 소재)에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개최하고, 자율주행 기술 개발 전략과 로드맵, 주요 개발 성과 및 향후 실행 방안을 발표했다.
현대차그룹은 9월 11일 경기 성남시 포티투닷 본사에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미디어 데이'를 열고 자율주행 개발 전략과 양산 로드맵을 공개했다. 자체 개발한 Atria AI와 외부 솔루션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기술 개발 속도와 내재화를 동시에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행사에는 박민우 현대차·기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 권정현 현대차·기아 자율주행개발센터장 겸 포티투닷 AD Division Lead 등이 참석했다. Atria AI 개발 현황과 차세대 VLA 기술, 데이터 중심의 개발 체계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박민우 사장은 “자율주행 경쟁은 더 이상 특정 기능의 우열을 가리는 경쟁이 아니다”며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그 결과를 실제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는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양산 전략은 엔비디아 기술 활용과 자체 AI 개발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엔비디아의 차량용 AI 컴퓨팅 플랫폼과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SDV 아키텍처에 접목해 2028년 상반기 레벨2+ 기능을 양산차에 적용하고, 같은 해 하반기 레벨2++ 차량을 내놓을 계획이다.
AVP본부와 포티투닷, 모셔널 등이 각각 활용해 온 센서 체계도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 10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통일한다. 차량별로 달랐던 데이터 형식을 일관되게 만들어 AI 학습과 검증 과정의 효율을 끌어올리려는 조치다.
동시에 AVP본부와 포티투닷은 E2E(End-to-End) 방식의 자체 자율주행 시스템인 Atria AI를 공동 개발한다. 두 조직의 개발 환경과 업무 절차, 정보 공유 체계를 통합하고 2029년 하반기 Atria AI 기반 레벨2++ 차량 양산을 목표로 잡았다.
두 개발 축을 연결하는 핵심은 '데이터 플라이휠'이다. 차량에서 주행 데이터를 모은 뒤 AI가 이를 학습·검증하고, 개선된 모델을 다시 차량에 배포해 새로운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현대차그룹은 이 순환 속도가 향후 자율주행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 확보 기반은 글로벌 판매망이다. 현대차·기아는 세계 190여개 국가·지역에서 연간 700만대 이상을 판매하고 있다. 그룹은 이 같은 양산 규모를 향후 다양한 실도로 주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력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40여대의 데이터 수집 전용 차량도 주야간 운행 중이다. 도로공사와 악천후를 비롯해 갑작스러운 차로 변경, 이면도로 주정차 차량 등 일반적인 주행 데이터만으로는 충분히 학습하기 어려운 '엣지 케이스'를 집중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데이터의 양뿐 아니라 학습 가치가 높은 상황을 골라내는 기술도 적용한다. '하드 이그잼플 마이닝'으로 AI가 오인식하거나 판단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자동 선별하고, '컨티뉴어스 트레이닝' 파이프라인을 통해 새 데이터를 반복 학습에 투입한다.
실도로에서 재현하기 어렵거나 위험한 상황은 가상 환경에서 검증한다. 실제 주행 영상을 3차원 환경으로 재구성하는 '3D 가우시안 스플래팅' 등의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돌발 상황을 반복 시험하고, 새 모델을 적용했을 때 기존 성능이 떨어지는지도 확인한다.
한국과 미국 개발 거점은 시차를 이용한 'Follow-the-Sun' 방식으로 연결된다. 한쪽 거점의 업무가 끝나면 다른 지역이 데이터 수집과 문제 분석, 모델 개선을 이어받아 사실상 24시간 개발 사이클을 가동하는 구조다.
주행 중 의미 있는 상황을 자동으로 남기는 '스페셜 이벤트 리코더(SER)'도 데이터 플라이휠에 순차적으로 결합한다. 운전자의 기록 요청뿐 아니라 급가속·급제동, 불안정한 차간 거리, 자율주행 기능 해제 등이 발생하면 관련 데이터를 저장한다.
향후에는 AI가 어려움을 겪는 상황 자체를 SER이 보다 효과적으로 찾아 데이터를 확보하도록 체계를 고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사람이 모든 예외 상황을 사전에 규정하지 않아도 학습 가치가 높은 데이터를 찾아내 개발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그룹 안팎의 데이터를 같은 기준으로 활용하기 위한 '데이터 유니언'도 구축한다. 원본 데이터를 기업 간 단순 교환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량과 조직별로 생성되는 데이터를 표준화해 AI 학습에 연결하는 생태계다. 우선 현대차·기아와 포티투닷, 모셔널 내부의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양산형 운전자 보조 시스템과 별도로 레벨4 자율주행 실증도 추진한다. 국토교통부와 협력해 연말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Atria AI를 적용한 SDV 페이스 카 기반 실증차를 투입하고, 국내 도로의 복잡한 교통 상황에서 성능과 안정성을 확인할 예정이다.
실증 과정에서 확보한 돌발 상황과 주행 시나리오는 다시 데이터 플라이휠에 투입된다. 레벨4 실증에서 얻은 데이터를 양산형 레벨2+ 이상 기술의 학습에도 활용하면서 두 영역의 기술 완성도를 함께 높이는 구조다.
권정현 부사장은 “자율주행 경쟁력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느냐보다,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학습과 검증, 성능 개선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며 데이터 플라이휠을 통해 실도로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차세대 기술로는 VLA(Vision-Language-Action)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카메라 등으로 얻은 시각 정보를 인식하고 언어를 기반으로 상황을 추론한 뒤 차량 행동까지 생성하는 구조로, 기존 E2E 모델보다 복잡한 상황의 판단력과 설명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포티투닷은 기존 E2E와 VLA를 병행 개발할 계획이다. VLA가 대규모 사전학습 지식과 언어 기반 추론 능력을 활용하면 주행 데이터만으로 충분히 학습하기 어려운 희귀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VLA 기술은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모델 검증 단계다. 올해 말부터 내년 초까지 실차 테스트를 포함한 개발 절차를 본격 가동하고, 실제 주행에서 발견된 문제를 다시 데이터 보강과 재학습으로 연결할 예정이다.
이희석 포티투닷 GL은 “VLA는 AI가 단순히 주행하는 수준을 넘어 상황을 이해하고 추론하며 행동하는 Physical AI 구현의 핵심 기술”이라며 “자율주행을 시작으로 로보틱스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기술 개발 현황을 보여주기 위해 Atria AI를 탑재한 SDV 테스트베드의 서울 도심 실주행 영상도 처음 공개했다. 운전자 개입 없이 복잡한 도심을 달리는 레벨2++ 수준의 주행을 통해 데이터 플라이휠을 활용한 AI 성능 개선 결과를 제시했다.
영상에는 박민우 사장과 정성균 포티투닷 GL이 탑승한 차량이 판교에서 경부고속도로와 올림픽대로, 동작대교, 숭례문을 거쳐 광화문까지 이동하는 과정이 담겼다. 두 사람은 실제 주행 과정에서 Atria AI의 판단 방식과 개발 방향을 설명했다.
강남 출근 시간대와 대형 차량 통행이 많은 잠실, 비가 내리는 판교에서 촬영한 실주행 영상도 공개됐다. 각 영상은 약 2~4분 동안 재생 속도 외 별도 편집 없이 원테이크로 구성해 실제 교통 환경에서 시스템이 대응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갓길 주정차 차량 회피와 갑작스러운 끼어들기, 비보호 좌회전, 혼잡 구간 보행자 인식, 이면도로 대향 차량 대응 등 10개 엣지 케이스도 제시됐다. 정형화된 시험장이 아니라 실제 도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변수를 처리하는 능력을 검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박민우 사장은 “자율주행은 Physical AI를 대표하는 기술이자 자동차 산업이 AI 산업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중심에 있다”며 글로벌 양산 역량과 포티투닷의 AI·소프트웨어 기술, 데이터 플라이휠을 결합해 신뢰할 수 있는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술 개발 속도와 안전은 서로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다”라며 “더 많은 예외 상황을 발견하고 학습할수록 자율주행은 더욱 안전해질 수 있으며, 현대차그룹은 충분히 검증된 기술만을 차량에 적용한다는 원칙 아래 개발 속도와 안전성을 함께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