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개운동에서 600년 전 묘비 발견

김상현 기자

등록 2021-05-31 07:33

상산 김씨 문중이 상주시 개운동 개원산 남쪽 끝자락에 있는 김제군부인 김제 조씨(金堤郡夫人金堤趙氏) 묘역 땅속에서 600여 년 전에 비석을 찾아 다시 세웠다.

 

상주 개운동에서 600년 전 묘비 발견(왼쪽 원 안이 향로석, 오른쪽 원 안은 비석) (사진=상주시)

주인공은 고려 때 삼원수로 이름을 떨친 상산 김씨(商山金氏) 낙성군(洛城君) 휘(諱) 선치(金先致)의 배위(配位·남편과 아내가 모두 죽었을 때 그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명문(銘文) 「金堤郡夫人金堤趙氏之墓」가, 뒷면에는 가운데 孝孫(효손), 前朝散大夫繕工副正金尙保(전조산대부선공부정김상보)와 前奉直郎仁順府判官金尙安(전봉직랑인순부판관김상안), 측면에는 正統八年癸亥三月日刻立(정통팔년계해삼월일각립)이 새겨져 1443년 3월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높이 130cm, 폭 29cm, 두께 16cm 정도로 위는 둥글게 다듬었고, 위 좌우와 전후 가운데는 도톰하게 줄로 이었는데,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다.

 

조 씨는 김제 조씨 시조(始祖) 벽성군(碧城君) 휘(諱) 연벽(連璧)의 증손녀로 생졸(태어나고 죽음) 연대를 알 수가 없었으나, 이 비의 발견으로 1443년 이전에 졸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군부인은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지은 여주 신륵사 「여주신륵사보제사리석종기(驪州神勒寺普濟舍利石鐘記)」의 「단월질(檀越秩)」에도 그 흔적이 적혀있다. 당시 비석을 세워 오던 중 후손 상주 목사 김광우(재임 1750~1752)가 1751년 다시 세우면서 이 비를 땅속에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향로석 한 점과 함께 상주시문화관광해설사 김광희씨가 축대 인근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비는 지금까지 상주에서 확인된 비석 중에서는 각자가 선명해 화서면 태봉의 금표비(1501년), 낙동면 문의현령(文義縣令) 김수억(金守億)의 묘갈(墓碣, 1500년, 무덤 앞에 세우는 동그스름한 비석) 보다도 그 연대가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의 석질과 글씨의 서체, 향로석의 문양 등은 앞으로 밝혀야 할 숙제이다. 이 지역은 군부인 부군과 후손들의 묘역이, 그 아래에는 개운재(開雲齋), 신도비, 사적비, 지방유형 문화재 제384호인 김선치의 벼루 등 여러 문화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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